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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마오리족 최연소 의원의 하카 연설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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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호모 미그란스]글로벌 ‘화제의 동영상’ 속 주인공 뉴질랜드 마오리족 최연소 의원의 하카 연설 의미… 보수우파 연합정부의 마오리어 규제와 와이탕기 조약 폐기 움직임 비판2023년 ...

뉴질랜드 마오리족 최연소 의원의 하카 연설 의미는

[호모 미그란스]글로벌 ‘화제의 동영상’ 속 주인공 뉴질랜드 마오리족 최연소 의원의 하카 연설 의미… 보수우파 연합정부의 마오리어 규제와 와이탕기 조약 폐기 움직임 비판2023년 12월 뉴질랜드 의회에서 마오리족 출신 하나 라휘티 마이피 클라크 의원이 ‘하카’(마오리족 전통춤) 연설을 하고 있다. 뉴질랜드 의회 누리집폴리네시아는 태평양 중부와 남부에 드문드문 떠 있는 1천여 개 섬을 통칭한다. 위로 하와이(미국), 왼쪽 아래에 뉴질랜드, 오른쪽 아래에 이스터섬(칠레)을 꼭짓점으로 잇는 ‘폴리네시아 삼각형’ 안의 섬과 수역을 아우른다. 각각의 거리가 1만~1만5천㎞에 이른다. 폴리네시아는 서쪽으로 인접한 미크로네시아, 멜라네시아와 태평양의 3대 섬 문화권을 형성한다. 2023년 기준 폴리네시아인은 약 200만 명. 이 중 마오리족이 절반 이상으로 가장 많다. 사모아인, 하와이 원주민, 타히티인, 통가인 등이 뒤를 잇는다.
뉴질랜드 마오리족 최연소 의원의 하카 연설 의미는
뉴질랜드 인구의 17.3% 차지하는 마오리족
뉴질랜드 마오리족 최연소 의원의 하카 연설 의미는
마오리 전승에 따르면 폴리네시아인 조상이 고향인 하와이키(현재 폴리네시아 동부 타히티섬으로 추정)에서 와카(마오리족의 전통 카누)를 타고 먼바다를 건너 오늘날 뉴질랜드 북섬에 닿은 게 마오리족의 시초다. 학계에서는 1300년대 초중반으로 본다. 뉴질랜드 마오리족은 자신들의 땅을 처음 봤던 모습인 ‘아오테아로아’(기다란 흰 구름)라고 불렀다. 18세기 후반 유럽인이 이 땅을 발견하기까지 400년 동안 아오테아로아는 오롯이 마오리 영토였다. 2023년 말 기준 뉴질랜드 마오리족은 약 90만4100명, 전체 인구의 17.3%다. 인접한 오스트레일리아에 약 17만 명, 영국·미국·캐나다 등 기타 지역에 약 3만 명의 마오리족이 산다.
뉴질랜드 마오리족 최연소 의원의 하카 연설 의미는
2023년 12월12일, 뉴질랜드 의회 안에서 뜻밖의 ‘하카’ 외침이 울려퍼졌다. 시위나 공연이 아니라, 하나라휘티 마이피클라크(21, Hana-Rawhiti Maipi-Clarke ) 의원의 당선 뒤 첫 의회 연설이었다. 하카는 마오리 원주민의 전통춤이자 의식이다. 여러 사람이 운율을 띤 구호를 우렁차게 외치는데, 눈을 부릅뜨고 혀를 내밀며 위협적인 표정을 짓고 가슴과 허벅지를 두드리며 발을 구르는 격렬한 동작을 함께 한다. 본디 전투를 앞두고 전사들의 사기를 북돋우고 상대를 겁주는 군무였다. 이방인을 환대하거나 망자를 추모하거나 새로운 시작을 축복하는 춤으로도 애용된다. 마이피 클라크 의원의 하카 연설은 2024년 1월 오스트레일리아의 공영방송 <에스비에스>(SBS)를 비롯한 외신들이 집중 보도하면서 새삼 화제가 됐다. 동영상 조회와 공유가 폭증했다.
마오리족인 마이피클라크 의원은 2023년 10월 뉴질랜드 총선에 마오리당 후보로 처음 출마해 당선했다. 마오리족 선거구 7곳 중 하나인 하우라키와이카토 선거구에서다. 경쟁 상대는 1996년 초선 의원이 된 뒤 내리 7선을 기록한 최장수 여성 국회의원 나나이아 마후타(노동당)였다. 마후타는 이 총선에서 보수 국민당에 정권을 내준 전임 노동당 정부의 외교장관을 지낸 원로 정치인이다. 마이피클라크는 1853년 뉴질랜드가 처음 총선을 치른 이래 170년 역사상 최연소 의원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7선의 원로 정치인 누른 20대 초선 의원
마이피클라크 의원은 평소 마오리족 언어와 정체성 보존 운동에 앞장섰다. 17살 때 마오리 전통 달력(태음력)인 마라마타카에 관한 책을 썼다. 2022년 9월에는 뉴질랜드 정부가 지정한 ‘마오리어 주간’에 맞춰 의회 밖 계단에서 마오리 언어와 전통 보존을 주장하는 연설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그는 2020년 대영제국 군인 존 페인 찰스 해밀턴의 동상 철거 운동을 이끈 타니티무 마이피의 친손녀이자, 마오리족 권리 운동가 하나 테 헤마라의 조카손녀다. 더 멀리는 1872년 마오리 원주민 최초로 뉴질랜드 행정위원회 위원(내각 장관급)에 임명되고 선출직 의원도 했던 위 카테네의 7대손이기도 하다. 해밀턴은 1864년 영국 식민지 군대와 마오리족의 전투에서 전사한 영국 해군 지휘관이다. 뉴질랜드 북섬 와이카토 지역의 중심 도시 해밀턴이 그의 이름을 따 명명됐다. 2013년에는 해밀턴 도심에 그의 동상이 세워졌으나, 마오리 공동체는 그가 전쟁 당시 마오리 원주민을 무차별 학살한 제국 군인이라며 동상 철거를 요구해왔다.
2024년 2월5일 뉴질랜드 북섬 와이탕기에서 마오리족 활동가들이 ‘와이탕기의 날’ 기념식을 앞두고 ‘와이탕기 조약의 집’ 경내로 행진하고 있다. 원주민 지도자들은 보수 국민당 정부의 마오리 원주민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AP 연합뉴스
마이피클라크 의원은 12분간의 연설에서 백인 이주민이 저지른 폭력과 수탈의 역사를 되짚고 마오리 원주민의 권리를 역설했다. “의원 여러분, 감사합니다”라는 첫마디부터 마오리어였다. 시작은 사제가 신탁을 전하는 것처럼 나직하고 리드미컬했다. “그들이 모카우를 물어뜯었나니, 그들이 오클랜드를 물어뜯었나니, 땅이 흔들리고 달이 기울고 별이 떨어지리라. 와이카토가 밤중에 깨어나리라. 아우, 아우, 아웨, 하!” 연설은 곧이어 격정적인 표정과 동작을 곁들인 하카로 돌변했다.
“하 아하 라, 하 아하 라? 헤아하 타마히 모 룽가이테 마레 툴~네이! (…) 휘티 휘티! 휘티 키 테 티카, 휘티 키 테 오라, 휘티 키 테 랑기마리에. 아우, 아우, 아웨 하!” 우리말 뜻은 이렇다. “이게 무엇인가, 이게 무엇인가? 이곳 공회당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 깨우라 깨우라! 올바름을 깨우라, 생명을 깨우라, 평화를 깨우라. 아우, 아우, 크게 외쳐라!” 2층 방청석에 있던 마오리 원주민들이 마오리어 구호를 따라 외쳤다. 의사당에 거대한 하카 함성이 메아리쳤다.
그 뒤로도 마이피클라크 의원은 영어와 마오리어를 섞어가며 연설을 이어갔다. 그는 “지난해(2022년) 연설은 조부모께 바쳤지만, 오늘 연설은 평생 교실 뒤편에 앉아 모국어 배우기를 갈망하며 수 세대를 기다려온 우리의 모든 아이들에게 바친다”고 운을 뗐다. 이어 “이 정부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나는 우리 아이들이 우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하겠다. 나는 의회 안에서 여러분을 위해 죽겠지만, 의회 밖에서는 여러분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또 “우리는 여기 있다. 우리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세계에서 가장 큰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 비록 다른 사람들은 와카에 올라타지 않더라도 말이죠”라고 덧붙여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현지 신문 <뉴질랜드 헤럴드>는 “마이피클라크 의원이 지난해(2022년) 마오리어 사용 청원 50주년 기념일 연설의 일부를 반복했는데, 이는 새 정부가 와이탕기 조약 적용과 마오리어 사용 축소를 입법하려는 계획을 발표한 뒤 다시 주목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부의 마오리어 사용 축소 입법 계획 등에 저항
앞서 2023년 10월 총선에서 중도우파 성향의 국민당이 전체 의석 123석의 단독 과반에 못 미친 48석으로 1위를 차지했다. 국민당은 뉴질랜드 행동당(11석), 뉴질랜드 제일당(8석)을 끌어들여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2017년 총선에서 세계 최연소 여성 총리인 저신다 아던(당시 37살)을 탄생시켰던 노동당은 6년 만에 보수우파 연정에 정권을 내줬다. 마오리당은 6석(4.9%)을 차지했는데, 인구 비율로 보면 대표성이 많이 미약하다. 보수 연정의 새 총리가 된 크리스토퍼 럭슨은 에어뉴질랜드 최고경영자를 지낸 기업인 출신이다. 2020년 총선에서 처음 의회에 발을 내딛고, 2021년 국민당 대표직까지 거머쥔 정치 초년생이다.
럭슨 총리는 집권하자마자 전임 노동당 정권의 주요 정책들을 뒤집는 일부터 시작했다. 해양 석유·가스 탐사의 재허용, 총기 규제 완화를 포함한 전반적 규제 재검토, 소득세 인하, 감세로 부족해진 재원 확충을 위한 금연법 폐지, 마오리족 보호 폐지 등을 추진하고 있다. 마이피클라크는 의회 연설에서 “불과 2주 동안 이 정부는 나의 세계 전부를 구석구석 공격하고 있다. 건강, 환경, 물, 땅, 천연자원, 마오리 언어, 아이들 그리고 와이탕기 조약에 따른 나와 여러분의 권리까지”라고 비판했다.
2012년 뉴질랜드 북섬 오클랜드에서 마오리족 전사들이 미국 국방장관의 방문을 환영하는 하카를 공연하고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1972년 9월 마오리 원주민 대표들은 마오리어 인정과 재사용 촉구 청원을 3만 명의 서명을 받아 의회에 냈다. 의회는 정부에 긍정적 조처를 권고했고, 이듬해부터 전국 초·중·고등학교에서 마오리어가 선택과목으로 채택됐다. 1987년에는 영어와 함께 마오리어도 뉴질랜드 공식 언어로 인정한 법이 발효됐다. 보수 국민당 연정의 마오리어 규제와 와이탕기 조약 폐기 움직임은 마오리 원주민과 백인 정착민의 호혜 공존의 노력을 반세기 전으로 되돌리는 퇴행이다.
앞서 1769년 여름, 영국 탐험가로 식민지 개척에 앞장섰던 제임스 쿡은 왕실의 밀령을 받고 남극 쪽으로 항해하다가 미지의 섬을 발견했다. 400년 동안 마오리족 왕국이었던 ‘아오테아로아’가 졸지에 영국령 ‘뉴질랜드’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듬해에는 쿡이 오스트레일리아를 발견했다. 유럽에는 아메리카 신대륙 발견 이후 또 하나의 신천지 횡재였다. 영국의 식민지 정착민이 늘면서 원주민과의 갈등과 무력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영국은 새 식민지의 확실한 인정과 안정이 시급했고, 마오리족은 또 다른 외세인 프랑스로부터 보호가 필요했다.
1840년 2월, 마오리 부족 연맹과 영국 국왕을 대리한 식민지 영사는 뉴질랜드 북섬의 와이탕기에서 중요한 조약을 맺었다. ‘와이탕기 조약’은 서문과 3개 조항으로 구성됐고, 영어와 마오리어로 각각 쓰였다. 영어본 본문은 이렇다.
제1조 뉴질랜드 부족 연맹의 추장들과 연맹의 일원이 되지 않은 개별 추장들은 영국 여왕 폐하에게 (…) 주권(Sovereignty)의 모든 권리와 권한을 절대적이고 유보 없이 양도한다.
제2조 영국 여왕 폐하는 뉴질랜드의 추장과 부족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한 토지 및 기타 재산의 배타적 소유권을 확인하고 보장한다. (…) 그러나 부족 연맹의 추장들은 토지의 독점적 선매권을 여왕 폐하에게 양도하며, 그 토지는 양쪽 대리인 사이에 합의된 가격으로 처분할 수 있다.
제3조 영국 여왕 폐하는 뉴질랜드 원주민도 보호하고 영국 신민의 모든 권리와 특권을 부여한다.
뉴질랜드 북섬의 ‘와이탕기 조약의 집’에 마오리족 전통 카누 ‘와카’가 전시돼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와이탕기 조약은 오늘날 뉴질랜드 역사와 헌법의 토대가 됐다. 마오리 부족연맹은 수많은 사본을 만들어 여러 지역에 분산된 부족 추장들의 서명을 추가했다. 그러나 마오리족의 모든 추장이 조약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마오리 원주민은 서구식 법률 개념과 모든 자연물에 대한 사적 소유에 익숙하지 않았다. 영어본과 마오리어본의 의미가 정확히 일치할 수 없었다. 특히 주권(혹은 통치권)의 소재를 규정한 첫째 조항이 문제였다. 마오리어 조약문에는 “왕국의 모든 영주는 그들의 모든 땅에 대한 통치(Government)를 영국 여왕에게 영원히 양도한다”고 쓰였다. 해석의 불일치에 따른 갈등은 결국 마오리 전쟁(1845~1872)의 원인이 됐다.
“제 목소리 들을 때마다 조상의 목소리가 메아리칠 것”
마이피클라크 의원은 의회 첫 연설을 마오리 동족에게 하는 인사말로 끝맺었다. “여러분이 제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조상의 목소리가 메아리칠 것입니다. 여러분이 제 눈을 볼 때마다 살아남은 우리 아이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3년 동안 여러분은 펜 없이도 역사가 다시 쓰이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어떤 역사가 쓰일까, 궁금하다.
*호모 미그란스: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현안들의 역사적 맥락과 관련 지식, 그에 얽힌 사람들 이야기를 4주에 한 차례씩 연재합니다. 호모 미그란스는 ‘더 나은 삶을 찾아 이주하는 인간’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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